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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관광지


동막해수욕장

백사장 뒤로 수백년 묵은 노송들이 늘어서 있다.

모래사장과 해수욕보다는 강화 남단에 펼쳐진 18백만 평의 커다란 갯벌탐사에 좋은 곳이다. 인근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강화의 남단갯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인천국제 공항도 보인다. 또한 주변에 함허동천 시범야영장 및 정수사 등의 볼거리가 있다.


함허동천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摩尼山:469.4m) 정수사(精修寺)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마니산 서쪽 기슭에 펼쳐져 있으며, 빼어난 산세를 끼고 곳곳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이 바위들을 넘나들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특히 계곡 한 켠에 200m에 달하는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니산의 절경으로 꼽힌다.


강화역사관

강화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단군왕검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던 참성단 등 우리나라의 개국과 함께 하는 역사의 고장이며 고려시대에는 대몽항쟁 39년간의 도읍지로서 팔만대장경판각, 고려청자 제작, 금속활자 주조 등 민속문화의 황금기를 꽃 피워 온 산실이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시 인조임금의 피난수도 이기도 했으며 조선말기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치와 천주교의 탄압으로 빚어진 프랑스 함대의 침입사건인 병인양요, 그리고 신미양요 그 후 운양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 체결 등 외세 열강의 침입에 의연히 맞서 싸웠던 국난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국난을 극복한 강인한 민족의 저력과 슬기로운 문화를 이어받은 강화는 한반도 역사문화의 축소판으로서 민족문화의 창달과 민족항쟁의 위업을 선양하고 호국정신의 함양을 위하여 1984년부터 5개년 사업으로 167천만원을 투입하여 19889월 강화역사관을 개관하였으며, 20012월에는 기존 유물을 재배치하여 역사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하였다.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1040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관은 지하1, 지상2층으로 총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옥외에는 갑곶돈대를 비롯하여 해선망 어선, 비석군 등을 볼 수 있다.


고인돌

강화도에는 이 고인돌 외에도 송해면(松海面)과 하점면에 걸쳐 고인돌군[支石墓群]이 있는데, 고려산(高麗山) 북쪽 경사면의 높은 능선 위에서 그 기슭의 평탄한 대지에 이르는 지점에 약 20∼30()의 북방식 고인돌들이 분포되어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인돌은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밭 가운데에 1기가 독립해 있는 것으로, 경기지방을 비롯하여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탁자식(卓子式)으로서, 뚜껑돌[蓋石]은 길이 710cm, 너비 550cm나 되는 거석이고, 그 밑에 2매의 굄돌이 받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북방식 고인돌의 구조는 4매의 굄돌로 직사각형 돌방[石室]을 구축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어 놓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고인돌은 돌방의 짧은 변을 이루는 2매의 굄돌이 없다. 이것은 과거에 파괴되어 없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전체의 지상 높이는 260cm이며, 긴 축은 남북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분오리돈대

조선시대에 축조한 강화 54돈대 중의 하나이다. 강화도의 남쪽 해안 중앙, 현재의 동막해수욕장 동쪽 끝에 있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이다.

강화돈대는 조선 숙종 5(1676) 청성부원군 김석주(金錫胄:1634~1684)의 건의를 받아들여 축조하였다 한다.

실제로 축성을 지휘한 것은 당시의 강화유수(江華留守)였던 윤이제(尹以濟)이다. 분오리 돈은 부천(富川)과 초지(草芝)의 외곽포대로서 망월돈(望月墩계룡돈 (鷄龍墩굴암돈(堀岩墩송강돈(松剛墩송곶돈(松串墩)과 함께 영문(營門)에 소속되었던 돈대이다. 따라서 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 두어 수직하게 하였다.

뒷산에서 해안으로 돌출되어 나온 산 능선의 끝부분에 위치하였는데, 좌우로 깊게 만곡(彎曲)된 갯벌을 이룬 포구를 끼고 있어 가시 범위가 매우 넓다.

동쪽으로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석축함으로써 절벽을 이루고, 지형에 맞추어 석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반월형을 하게 되었다.

포좌는 4문이고 치첩(雉堞)37개소이다.


마니산

마니산(마리산이라고도)의 정상엔 단군신화가 깃든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단군성조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의 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크게 지낸 기록이 보인다.

이 풍습은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참성단은 밑부분이 둥글고 윗부분은 사각형인데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생각에서 유래된 것이다.

해마다 개천절인 103일이면 이곳에서 행사가 펄쳐지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되기도 한다. 참성단에서는 인천앞 넓은 바다와 강화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등사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372)때 창건했다는 고찰로 사내에는 보물393호인 전등사 범종과 양헌수 장군 승전비 등이 있다.

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내에 위치하고 있으며,우는 나무 등 많은 고목이 있어 더욱 고색창연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석모도

강화도 외포리선착장에서 뱃길로 1.5km(10분 거리)에 있는 석모도.

석모도에 있는 민머루 해수욕장은 물이 빠졌을 때 개펄 탐사를 하기에 좋다.

석모도에서는 국내 유일의 관음 사찰이라는 보문사가 유명하다.

거대한 암벽속을 파고 들어가 조성된 석굴 법당과 산 정상의 눈썹모양 바위에 새겨진 대형 마애석불이 명물이다.


보문사

보문사는 석모도 낙가산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 불교 관음사상의 중심지다.

남해 금산사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한국의 3관음기도처인 보문사는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관세음보살좌상으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사실상 이마애관세음보살좌상은 1928년에 새겨진 것이라 한다.

보문사에 오를 때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천연동굴 석실안에 있는 전설속의 나한전. 그 안에 모셔진 석가모니 미륵불 등 22체의 나한상에는 신라 때 한 어부의 그물에 걸린 돌이 석불로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 앞에 있는 향나무와 느티나무도 명물인데, 향나무는 지방기념물 17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령이 약 600여년이나 된 나무다


강화갯벌센터

갯벌센터는 센터 건물 뿐 아니라 그 주변 갯벌을 포함하여 철새 도래지의 탐조대와 갯벌 주변의 지도식(Guided)과 자기학습식(Self-Guided) 학습장을 마련함으로 해서 환경친화적인 갯벌 연구교육문화센터의 개념을 지닌다.

갯벌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 - 모두를 위한 곳이다. 갯벌이 있기에 날아다니는, 헤엄치는 옆으로 기어다니는 다양한 종류의 바다생물이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조류들이 날아든다. 그렇게 형성된 갯벌생태계는 인간이 즐겨 찾아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런한 갯벌의 생태적, 교육적, 경제적, 사회적인 역할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요구된다.

이는 반드시 정형화된 시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갯벌의 자연 전체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갯벌센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옥토끼우주센터

옥토끼 우주센터는 북향으로 20여 미터 경사진 강화도산지 8,000여평의 대지에 계획된 우주과학 테마파크입니다.

어린이들이 우주과학, 항공, 로켓, 항공우주 체험시설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이단지는 다양한 실내외 전시, 놀이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된 실내공간은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관은 대부분 경사 지형에 묻혀있는 반 지하공간으로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여 기존 지형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지형을 형성화 하였습니다.

이 지하건물의 노출부위들은 복잡한 지형, 건물에서의 다양한 레벨들과 다양한 방향을 연결하는 동선체계입니다. 이 체계는 마치 히드라의 촉수처럼 건물에서 출발하여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이중 하나의 촉수는 수직방향으로 확장되어 천체관츨 탑을 구성하며, 3차원적인 건물 구도로 형성화되었습니다.


갑곶돈대

사적 제 306호로 지정되어져 있는 이 돈대는 고려 조정이 고종 19(1232)부터 원종 11(1270)까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고(蒙古)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要塞)였다.

조선 인조 22(1644) 강화에 여러 진()이 설치될 때 제물진(濟物鎭)에 소속된 돈대로서 숙종 5(1679)축조되었다.

고종 3(1866) 97일 프랑스의 극동함대병력 600여명이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江華城), 문수산성(文殊山城)등을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동년 1013일 프랑스군은 정족산성(鼎足山城) 전투에서 양헌수(梁憲洙)장군 부대에 패주하였다.

돈대안에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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